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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칼럼] 폭염 속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 귀뚜라미

작성일 : 2018-08-21 11:37



여전히 폭염 속에 갇혀있다. 그러나 그 폭염 속에서도 가을의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아침 저녁으로 꽤나 선선한 바람이 분다. 필자가 사는 성북동 산자락에는 이미 가을의 전령 귀뚜라미가 찾아왔다. 귀뚜라미의 한자어인 실솔(蟋蟀)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가(詩歌) 문학을 대표하는 <시경(詩經>에 수록된 시이기도 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말라는 내용으로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1장이다.

“蟋蟀在堂(실솔재당) 귀뚜라미가 마루에 있으니/ 歲聿其莫(세율기모) 해가 드디어 저물었구나.

今我不樂(금아불락) 이제 우리가 즐거워하지 않으면 / 日月其除(일월기제) 해와 달은 가버린다

無已大康(무이태강) 너무 편안하지 아니한가/ 職思其居(직사기거) 자신의 직책을 생각하여

好樂無荒(호락무황) 좋고 즐거움이 지나치지 않음이/ 良士瞿瞿(양사구구) 어진 선비가 조심할 내용이다.

사족을 달자면 귀뚜라미가 집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제 좀 있으면 한해가 저물어간다는 소식이 게으름 피우지 말고 겨울 준비를 하고, 그리고 조신하게 행동하고 올바른 마음가짐을 해서 한해를 잘 마무리하라는 내용이다.

비슷한 교훈으로 “귀뚜라미가 울면 게으른 아낙이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여름철에 부지런히 길쌈해야 할 아낙네가 실컷 게으름을 피우다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놀라 김쌈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귀뚜라미를 ‘촉직(促織)’이라고도 한다. 베를 짜는 것(織)을 재촉하라고(促) 우는 벌레라는 의미다.

옛날 사람들은 귀뚜라미를 지루한 여름철의 끝과 시원한 가을철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으로 생각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귀뚜라미 소리로 주변의 온도를 짐작했다는 기록도 있다. “귀뚜라미는 가난한 자의 온도계”라는 미국 속담도 여기에서 나왔다.

1897년 미국의 물리학자 아모스 돌베어(Amos Dolbear, 1837~1910)가 라는 학술지에 주변 온도와 귀뚜라미 소리의 연관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일명 ‘돌베어 법칙’을 만들어 냈다. 종마다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긴 꼬리 귀뚜라미가 바로 ‘온도계 귀뚜라미’다. 14초 동안 우는 횟수에 40을 더하면 화씨 온도가 나온다. 예를 들어 귀뚜라미가 14초 동안 35회 울었다면 화씨 온도는 75도이고 이것을 섭씨로 따지면 24도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지역과 풍토가 다른 우리나라 귀뚜라미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지만 굉장히 정확하다고 한다.

귀뚜라미는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온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을 때는 신진대사 속도가 비교적 느린 편이기 때문에 외부 온도가 그대로 체온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귀뚜라미 소리를 매미처럼 ‘우는’ 소리로 알고있지만 사실은 마찰음이다. 두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울음소리의 빈도가 더 높아진다. 이는 날개를 비빌 때 귀뚜라미의 근육이 수축하게 되는데 이런 신체활동은 온도가 오를수록 더 반응이 빨리 일어나기 때문이다. 귀뚜라미는 섭씨 24도일 때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약간의 늦더위가 남아있는 이맘때가 귀뚜라미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 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 역시 귀뚜라미를 영리한 곤충이라고 여겼다. “칠월 귀뚜라미 가을 알 듯한다”는 속담처럼 아직 더운 감이 남아있는 음력 7월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가을 전령’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한갓 미물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자연의 질서는 늘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의 질서는 늘 추악한 것 같다.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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